이브 생 로랑 (Yves Saint Laurent), 영화로 보는 패션

20세기 최고의 천재 디자이너, ‘최초’라는 타이틀을 가장 많이 소유한 패션 혁명가, 시대를 디자인한 천재 아티스트 이브 생 로랑 (Yves Saint Laurent). 불멸의 패션 아이콘 이브 생 로랑의 삶과 사랑, 그리고 숨겨진 이야기를 다룬 영화 ‘이브 생 로랑’은 20세기 최고의 천재 디자이너이자 불멸의 패션 아이콘으로 추앙받는 이브 생 로랑의 일대기를 담았다.

프랑스의 배우 출신 감독 자릴 레스페르와 최고 연기파 배우 피에르 니네이, 기욤 갈리엔이 만난 작품이다. 특히 실제 이브 생 로랑을 보는 것만 같은 완벽한 열연을 선보인 주연배우 피에르 니네이는 실제 이브 생 로랑의 동반자였던 피에르 베르제에게 “이브 생 로랑을 연기한 피에르 니네이의 연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며 “그와 너무 비슷해서 심지어 화가 날 정도였다”라는 극찬을 받았다.

이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는 피에르 베르제가 유일하게 인정한 그의 공식 일대기 영화라는 점에 있다. 피에르 베르제-이브 생 로랑 재단의 긴밀한 협조 덕분에 이브 생 로랑이 대부분 시간을 보냈던 파리와 모로코의 장소들이 그대로 스크린에 담겼다. 또한, 패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세기의 패션쇼들이 재현되어 영화를 감상하는 가치를 더한다.

패션이 새로운 고객 창출과 끊임 없는 트랜드를 생산해 내는 산업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20세기 초, 패션 산업은 많은 스타 패션 디자이너를 창조해 냈다. 스타 패션 디자이너로는 20세기 초의 샤넬과 크리스찬 디올을 시작으로 이브 생 로랑, 랄프 로렌, 조르지오 아르마니 , 베르 사체에서 알렉산더 맥퀸, 안나수이, 발렌시아가, 도나 카렌등 세상의 브랜드 네이밍 만큼 많은 스타처럼 등장한 패션 디자이너들이 많다. 그러나 패션디자이너의 완전체이면서 천재라고 불리는 디자이너들은 몇 명되지 않는다. 크리스찬 디올, 알렉산더 맥퀸, 그리고 이브 생 로랑. 이들 중 50년동안 천재라고 불리면서 세상의 패션을 흔든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 (Yves Saint Laurent).

1936년 8월 알제리에서 태어난 이브 생 로랑은 1953년 크리스찬 디올에 입사하면서 패션을 창조해내고 유행시키는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1957년 크리스찬 디올이 사망하자 23세의 젊은 나이로 디올 의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이 된다. 수석 디자이너로 활동하고 얼마뒤 입대를 하게 되는 그는 그 후 조울증으로 군대에서 차별적인 대우를 받게 되고 정신병원에 격리되기까지 한다. 그로 인해 평생 그를 따라다녔던 조울증은 때로는 영감의 원천으로 때로는 정신적인 피폐로 그의 삶을 이끌게 된다.

그의 평생의 친구이자 동반자인 피에르 베르제. 첫 만남에서 부터 서로에게 강렬한 호감과 사랑을 느끼게 된 둘은 이브 생 로랑이 사망할때 까지 이어지며 인생의 동반자로써 이브 생 로랑이라는 브랜드의 파트너로써 때로는 미친듯이 사랑하며, 때로는 미친듯이 미워하고, 또 미친듯이 혐오하면서도, 또 미친듯이 그리워하게 된다. 영화 ‘이브 생 로랑’은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의 드라마틱한 사랑을 주제로 한다. 2010년의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가 본인들이 직접 출연한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영화라면, 2014년의 ‘이브 생 로랑’은 프랑스 영화가 그들의 사랑과 업적을 기리면서 만든 추모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브 생 로랑의 마조렐정원
(이브 생 로랑의 마조렐정원 Jardin Majorelle)

영화 “이브 생 로랑’은 그의 평생의 동반자인 피에르 베르제의 고독한 감상으로 시작된다. 어린 시절 카톨릭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이브 생 로랑은 그의 개인적인 스타일링에서도 나타난다. 카톨릭에 영향을 받은 보수적이면서도 격식을 차린 수트와 고급스럽고 엣지를 갖춘 일상복들은 목까지 채우는 프론트 단추처럼 때로는 소매끝까지 채우는 커프스 단추처럼 깔끔하고 단정하면서 귀족스럽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아도 유년기 시절부터 어머니와 여동생등 주변의 여성들의 패션과 그녀들의 아름다움을 돋보이는 스타일링을 직접 해주었던 그는 60년대,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를 거치면서도 시대를 반영한 여성들의 아름다움을 혁신적으로 표현했다. 대표작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상징이 된 몬드리안 룩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턱시도 스타일을 여성스럽게 변형시켜 여성들로 하여금 “판타롱 팬츠” 스타일을 받아들이도록 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스타일이 가장 마음에 든다. 런웨이가끝나고 수 많은 관객들에 둘러싸인 영광의 순간 항상 부드러운 미소와 친절한 말투로 같이 일하는 장인들을 대했다는 이브 생 로랑.

이브 생 로랑이 떠난 이브 생 로랑에 몇 명의 디렉터가 왔다가 떠나고 현재는 안토니 바카렐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다. 안토니 바카렐로 이전에 디렉팅을 맡았던 에디 슬리먼은 “이브”를 뺀 “생로랑”으로 브랜드 네이밍을 바꾸어 버렸지만, 오늘의 생로랑은 여전히 클래식하고 혁신적이며 여성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드러낸 예전의 “이브 생 로랑” 그대로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 이브 생 로랑의 영화속 이브와 피에르
    이브 생 로랑 Yves Saint Laurent

영화에서 이브는 항상 고뇌한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돈이나 남의 시선 등 속물 적인 요소를 신경쓸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았던 그는,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만 하고 살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더욱 혼란스러워 한다. 그러나 모든 걸 버리고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기에는 성공이라는 달콤한 보상에 너무도 중독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끊임없이 그 천재성을 증명하기 위해 컬렉션을 내놓고 또 내놓아야 했고 자신을 향한 무언의 압박에 짓눌려 방탕을 택하고 만다. 평생을 우울증으로 검은 삶을 살았던 그가 패션의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천재라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고흐, 이상, 쇼팽 등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예술가들은 대부분 정신적 문제를 안고 살았다. 이브가 영화에서 말한 것 처럼, 창조하지 않는 시간에는 머릿 속이 울음과 우울의 소리로 가득 찼던 것일까. 서양에서는 일찍이 멜랑콜리와 천재성의 상관관계에 주목했다. 실제로 모차르트, 베토벤, 고갱, 고흐, 헤밍웨이 등 셀 수 없이 많은 예술가들이 우울증으로 고생하였으며, 창조와 창의력, 그리고 상상력의 시작은 우울감이기 때문에 우울은 예술가의 필수 조건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경조증의 단계에서 인간은 사고와 감정의 폭이 넓어져 행복감, 활력, 자긍심 등이 고조되어 뇌의 반응 속도가 빨라지므로, 상상력, 창의력이 극대화 된다고 한다. 반대로 우울증의 단계에서는 침울한 사색과 비극, 고뇌로 인해 우울한 마음을 달래려고 자기치유의 형태로 예술적 영감이 활성화 된다고 하니, 조울증이나 양극성 장애를 가진 예술가가 많다는 말이 영 거짓은 아닌 셈이다.

또한 우울증 병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는 능력이 탁월하며, 예민한 감각으로 변화를 빨리 알아 챈다고 한다. 이브생로랑 또한 시대를 앞서가는 감각으로는 단연 최고의 디자이너였다. 천재의 우울과 광기는 인류에게는 또다른 축복이기도 하다. 그들의 내면은 고통으로 가득 차 있겠지만, 그것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이토록 아름다운 작품이 탄생하는 고로, 천재의 삶은 화려하지만 확실히 애달픈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