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리스’, ‘앤드로지너스’라는 수식어 아래 복식 개념이 여성과 남성의 구별을 초월하는 옷차림은 이제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나 뮤지션 해리 스타일스 등 유명인이 스커트를 입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지만, 이미 오래전에 여성이 수트를 입은 순간 성별의 구분은 무의미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성이 수트를 입기 전까지, 날렵하게 재단한 재킷이나 코트, 베스트 같은 테일러드 실루엣과 핀 스트라이프, 글렌 체크 같은 패턴 등은 남성의 옷장을 채우기에 바빴으니까 말입니다.
2023~2024 시즌, 많은 디자이너가 담합이라도 한 듯 중성적 이면서도 파워풀하고 볼드한 오라를 갖춘 파워 슈트를 대거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어깨에 대형 패드를 부착하고 더블브레스트를 즐겨 입던 1980년대의 과감하고 낙낙하던 실루엣을 연상시키는데요. 먼져 많은 분들이 헷갈려하는 패션인 ‘앤드로지너스(Androgynous)룩’ 패션과 ‘젠더리스(Genderless)룩’ 패션에 대하여 정리해보고, 세계적인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젠더리스 트랜드에 맞춰 제시하고 있는 스타일링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앤드로지너스(Androgynous)룩
젠더리스와 비슷한 뜻으로 사용되어 온 ‘엔드로지너스 룩’은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패션에서도 해체주의의 움직임이 시작되어, 복식에서 성별·연령·상황 등에 따른 고정관념이 해체되면서 나타난 패션 스타일 입니다.
더 쉽게 풀이하면 성의 구분에 따른 고정관념의 해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자는 치마, 남자는 바지를 입어야 한다는 기존의 관념이 아니라 여자도 수트를 입을 수 있고, 남자도 치마를 입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패션에서 남녀의 구분을 2분법 적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성, 연령, 상황에 따라 다양한 패션을 수용할 수 있다는 관념을 나타내며 그러한 관념이 패션에 반영된 것이 ‘앤드로지너스 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트 입은 여자, 치마 입은 남자! 완전히 기존의 성관념을 해체하는 착장입니다. 바로 이것이 ‘앤드로지너스 룩’입니다.
젠더리스(Genderless)룩
다음으로 젠더리스 룩은 말 그대로 성과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옷차림을 즐기는 새로운 패션 경향을 이르는 말입니다. 다시 쉽게 설명하면 옷 차림으로 성과 나이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인데요. 요즘 이 젠더리스 룩의 경향이 더 강해지고 있으며 이에 앞다투어 세계적인 디자인 하우스에서 젠더리스 패션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젠더리스 룩의 예를 들자면 지하철에서 만난 머리가 길고 여성스러운 옷 차림의 앞사람이 자세히 보니 여자가 아니라 남자인 경험이나, 남자처럼 보였는데 알고 보니 여자였다는 이야기가 종종 전해지는데요. 이게 바로 젠더리스 입니다. 패션으로 성과 나이를 구분할 수 없는 시대를 나타내며 여자처럼 또는 남자처럼 옷차림을 갖춰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는 트랜드를 말합니다.
젠더리스 스타일링, 생로랑의 스커트 수트
젠더리스 룩으로 가득찬 생로랑 런웨이. 성별의 경계가 사라진 자리는 고급스러운 소재와 타임리스한 스타일링이 더해져 전체적인 룩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힘을 보탰습니다. 샤프한 어깨선이 돋보이는 볼드한 블레이저의 스커트 슈트를 선보인 생 로랑.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안토니 바카렐로는 2023 F/W 컬렉션을 소개하며 특정 여성상을 구현하는 대신 “정교하고 감성적이면서 무게감 있는 생 로랑 스타일에 자신만의 스타일과 모던함을 조합해 새로운 실루엣을 선보이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바로 컬렉션에서 반복적으로 보이는 구조적인 스커트 수트입니다. 그는 성별의 경계를 지우기 위해 날카로운 테일러링과 남성복에서 주로 사용하는 패턴을 적극 차용했다고 전했습니다. 이는 시그너처 스카프와 시어한 스타킹, 블라우스, 스커트, 팬츠 등과 충돌하며 때로는 모던하게 때로는 화려하게 쿠튀르적인 심상을 완성했습니다.
오버사이즈 테일러링 수트, 발렌시아가
지난 시즌, 거센 논란에 휘말린 직후 기본에 충실한 컬렉션을 선보인 발렌시아가에서 선택한 ‘본질’ 역시 오버사이즈 테일러링 수트였습니다. 뎀나 바잘리아가 이끄는 발렌시아가는 매 시즌 독특한 마케팅으로 흥미를 끌었으나 넘지 말아야 할 도덕적 선을 넘는 바람에 거센 역풍을 맞았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번 시즌에는 어떤 퍼포먼스도 없이 차분한 가운데 런웨이를 치렀는데, 그래서인지 의상이 더욱 돋보이는 자리였습니다. 로고도 슬로건도 없이 오로지 실루엣과 패턴, 스타일링을 부각한 의상들. 테일러링이 탁월한 발렌시아가의 유산과 언밸런스한 커팅, 유니크한 패턴의 초기 베트멍의 매력이 조화를 이뤄 남녀 구분 없이 뎀나 바잘리아의 추종자를 다시 열광 시키기에 충분한 자리였습니다.
젠더리스 룩을 위한 파워풀한 스타일링
아방가르드한 체크 패턴의 파워 수트를 선보인 루아르와 크래프트맨십을 더한 파워 코트를 소개한 톰 브라운. 팬츠리스 소녀미에 파워 재킷을 더한 비비안 웨스트우드와 미우미우, 1980년대를 지나 90년대로 넘어가는 오버사이즈 수트의 보테가 베네타와 구찌의 더블브레스트 코트도 런웨이에서 시선을 모았습니다.
당장 신상 아이템이 없다면, 옷장 안에 잠자고 있는 엄마 아빠의 낡은 코트, 남자 친구의 낙낙한 재킷을 눈여겨 보면 금새 젠더리스 트랜드를 따라 잡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시어한 스타킹이나 펜슬 스커트, 캐시미어 니트 팬츠, 혹은 바닥까지 끌리는 트랙 수츠가 충분히 젠더리스 스타일링의 어울릴는 아이템이 됩니다.
남과 여, 신상과 빈티지, 포멀과 캐주얼, 아름다움에는 경계가 없으므로 파워풀한 스타일링을 선택한다면 젠더리스 룩을 쉽게 완성하실 수 있습니다.